시와 노래

「해부극장」- 한강 | Bird

cikat 2021. 11. 17. 19:23

해부극장

한강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 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Billie Marten - Bird
Nobody's watching
아무도 봐주지 않아요

Drowning in words so sweet
달콤한 말들에 빠져

Mild is the water
포근히 감싸오는 물속에

Caught as a bird once free
자유를 잃은 새처럼 갇혀버렸죠

 

 


 

*해부극장 - 17세기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안드레아 베살리우스의 책. 수년간의 급진적 해부 연구 끝에 뼈와 장기, 근육 등 정교한 세부를 목판에 새겨 제작했다. 독특한 구도의 해골 그림들이 실려 있다.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실린 해부극장이라는 시다.

해부극장을 검색하다가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한강과 베살리우스의 '해부극장' 

안드레아 베살리우스의 책과 이 시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 수 있다.

『De Humani Corporis Fabrica Libri Septem』 제1권에 실린 그림. ⓒ Wellcome Images

 

해부극장이라는 독특한 제목이 어떻게 생겨난건지 궁금했는데, 17세기 유럽 대학의 해부학 강의실이 원형극장식이었다고 한다. 제목에 이끌려 읽고 나면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시다. 읽으면서 장면이 그대로 상상되는 게 참 재밌었다.

 

기억에 남는 건 해골을 표현한 방식이다.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 개인적으로 텅 빈 눈에서 단순히 해골을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다른 해골이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라고 했을 때 두 해골이 서로 위로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 눈이 없는 해골이 다른 해골의 눈을 들여다 본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건 눈을 마주본다는 행위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태도.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