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 정이현, 임솔아, 정지돈
이 책에는 사랑, 이별, 죽음을 주제로 세 명의 작가가 쓴 소설이 실려 있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소설이었다. 3개의 소설 다 재밌었는데, 결말이 너무 열려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내가 놓친 게 있나 앞으로 다시 가서 읽을 정도였다. 그래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금세 빠져들기도 하고, 머릿속으로 상상되는 이미지가 좋았으므로 좋은 소설이라 하고 싶다.
사랑에 관한 짧은 소설 : 우리가 떠난 해변에 | 정이현
설과 주영은 아주 오래 사귀었다가 헤어진 연인이다. 방송작가인 설은 일을 위해 짐을 챙기던 중 주영에게 문자를 받는다. 주영의 건강이 악화되어 설을 보고싶어 한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한편 설은 직장동료였던 선우와 함께 새로 기획하는 프로그램 출연자의 인터뷰를 위해 바다 근처 커피숍을 방문한다. 해당 프로그램을 기획한 선우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예정 출연자인 노정훈, 이혜정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은 모든 게 달랐어요. 그냥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보였어요. 태어날 때도 자라는 동안에도 어른이 되어서 경험한 삶에도 접점과 교차점이 없는 사람들. 이런 두 사람이 사흘 만에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그게 경이롭고 끔찍하게 불가사의했어요!
선우는 오래전에 방영된 연애프로그램에 나온 노정훈, 이혜정의 사랑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는다. 집안의 배경, 성격, 목표, 직업 등 모든 게 다른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그들의 동향을 찾는 선우의 모습이 신기하고 열정있어 보였다. 이런 독특한 관점과 한 소재에 파고들 수 있는 집중력이 있어야 방송피디가 되는 것인가? 직업과 참 어울리는 성격이라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진행되는 설의 과거회상은 둘의 과거를 추측하게 하는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이내 논리적 인과관계도 없고 맥락도 이어지지 않는 순간에 아직도 불쑥 그 이름을 떠올린다는 사실에 침울해졌다.
아무 연관이 없는 순간에도 종종 주영이 떠오르는 설. 헤어진 연인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때 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로 또다시 한 시기를 지나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만났기 때문에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한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도 성장하면서 점점 변하기 때문에 점점 달라지는 서로의 모습 때문에 다투는 일도 생겼을 것이다.
사랑이 고정불변한 틀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도 착각 아닌가요? 사랑은 감정인데 네모 통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원형 통에 담으면 또 원형이 되는 거죠.
이 문장은 그대로도 아름답지만 나한테는 특히 더 반가운 부분이었다. 좋아하는 친구가 예전에 이 문장과 비슷한 말을 해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정제된 문장으로 읽으니 그 때의 기억이 회상되며 잠시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때로는 공감하게 만드는 문장이 소설을 읽으며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 때마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책을 읽으며 얻어가고 싶은 건 사랑과 같은 철학적인 주제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가인데, 그런 것들이 듬뿍 담긴 소설이었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사랑이라는 감정을 굉장히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낸 것 같다. 정이현 작가의 다른 책이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약속 장소에 들어섰을 때, 선우는 해가 지는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자신의 뒤쪽에 커피숍의 유리창이 나 있으며 그곳을 통해 보이는 하늘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쏟아져 들어올 것 같은 자리에 작은 화덕피자 가게를 열어 간판을 달던 날, 그는 일생에서 제일 행복했다.
두 번의 사업 실패를 겪고 마침내 작은 화덕피자를 차린 정훈. 나름대로 본인의 행복을 찾은 것 같다.
몸이 조금 나아졌을 때 담당의를 만나고 온 어머니가, 연주는 계속 할 수 있을 거래, 라며 기뻐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겠다고 결심한 건 그때부터였다.
어머니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던 혜정. 사고를 당했지만 본인의 걱정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연주를 할 수 있는지만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고 무언가를 결심한다.
가지고 갈 물건을 결정하는 건 무엇을 두고 가야 할 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당장 숨이 멈춰도 될 정도로 충만한 순간과 또 그만큼 가혹한 순간이 공존하는 여행이었다.
아니요,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아요, 하고 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다고 정말 그대로 있는 걸까요, 하고.
과거의 사랑이 사라지냐는 정훈의 말에 의문을 던지는 설.
모든 멈춘 것은 퇴색하고 틈이 벌어지고 낡아간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는 제자리에서 조금씩 바스러지고 있다. 어느 날 회색 재로 풀썩 무너져 내려 실체조차 없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사랑도 언젠가 그처럼 소멸하리라는 희망만이 그동안 설을 버티게 했다.
결말과 관련된 짧은 생각 (스포주의)
이야기는 설이 주영의 병원을 찾아가며 끝난다. 다만 주영을 실제로 봤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좀 찝찝하기도 하고 중간에 뚝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주영을 회상했던 설의 모습을 다시 찾아보며 나름대로 결말을 해석해보려 했지만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이혼한 정훈과 혜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은 계속해서 주영과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극적으로 만난 사랑도 이렇게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보며, 오래된 사랑(설과 주영)도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출장을 가는 모든 과정에서 설은 주영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딘가 고여 있을 눈물이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좋은 징조였다.
주영과 헤어졌음에도 계속 주영을 잊지 못했던 설이 마지막에는 이별을 받아들였다는 뜻 아닐까?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던 미련과 후회가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는 느낌이었다. 주영의 병실을 찾아가지 않고 병원에 앉아 환자들이 주영인지 아닌지 생각했던 걸 보면, 병원에 간 건 주영을 보러 간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좀 더 상상력을 동원해보면 우연히 주영과 만나 마무리를 지었을 수도 있고. 뒷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보단 설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기로 했다.
주영의 성별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는다. 다만 문학 캠프에서 여학생들만 같은 방을 썼다고 하니 여성으로 추측할 뿐이다. 나는 사실 처음 읽을 때부터 여자란 게 느껴졌는데, 작가가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성별에 관계 없이, 즉 아무런 편견 없이 두 사람을 그저 오래된 연인으로만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주어졌다. 그래서 두 사람의 과거가 나올 때마다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문학 캠프에서 처음 만났던 주영과 설. 롤링페이퍼에 마침표 없이 적힌 문장이 주영의 것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설의 간질간질한 첫사랑, 마치 청춘 로맨스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계속 같이 있고 싶어 영원히
이별에 관한 짧은 소설 : 쉴 곳 | 임솔아
민영과 민기는 18살 차이가 나는 남매다. 민영이 7살 때 민기와 정화가 결혼했기 때문에 민기와 정화 부부의 아이처럼 자랐다. 지금은 사회인이 되어 민기의 집을 찾아간 민영. 사회적인 체면을 중시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민기와,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정화. 둘은 민영이 어렸을 때 자주 다투곤 했다. 지금은 귀엽게 투닥거리는 정도이지만, 시간이 지났음에도 서로의 속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민영은 평가한다.
소설을 읽으면 부부와 민영의 관계에서 미묘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근데 정말 미묘하다. 남매인데 부모자식처럼 자란 세 사람, 분명히 애틋함이 있고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은 존재한다. 민기와 정화가 민영을 앞에 두고 서로의 호칭을 '오빠', '언니'라고 칭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부모들이 서로를 애기엄마, 애기아빠라고 부르듯이 민영을 기준으로 서로를 칭한다. 그런 모습에 비해 민기는 본인이 다쳐서 코수술을 했다는 사실은 숨기려 한다. 아마 민영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예전부터 심각한 일이나 중대사를 민영에게 알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민기의 입장에선 아직도 민영이 어린 동생으로 보이기에 자기가 다친 일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나싶다. 그러니까 단순히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거리감이 있다기 보다는, 나이 차가 많은 남매라는 애매한 관계와, 민영이 독립하면서 좁혀지지 않은 세월의 간극이 그 미묘함을 생성한 것 같다.
"언니, 해볼래? 자기가 운전하면 멀미가 안 나."
"그냥 해봐. 달걀 꺼내듯이."
민영이 정화와 드라이브 가면서 정화에게 운전을 권유하는 장면이다. 뜬금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부분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사실 이 소설을 도서관에서 처음 읽게 됐는데, 대학원 학업계획서를 쓰다가 너무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아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가져와 처음 펼친 책이었다. 그 때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과 걱정, 불안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이 책은 일종의 도피처였는데, "그냥 해봐. 달걀 꺼내듯이." 이 문장을 읽으며 내가 지금 망설이는 모든 일들이 그냥 달걀을 꺼내는 일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내 망설임을 위해 쓰인 듯한 문장이었다. 그 때의 해방감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앞으로는 어려운 일을 도전할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리고 싶다.
"그냥 해봐. 달걀 꺼내듯이."
결말에 대한 짧은 생각 (스포주의)
이 소설도 결말을 해석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냥 민영과 정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드라이브를 시작하며 끝난다. 민기와 정화의 관계를 되짚어가며 읽어보면, 두 사람 사이가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아마 민기는 물건으로 본인을 세게 내려치는 자해를 했던 것 같다. 민영과 정화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민기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민영이 어렸을 때 민기와 정화가 싸우는 모습을 두려워했다고 한 걸 보면, 두 사람은 결혼 초창기에 심한 말다툼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민기는 정화가 겉으로는 툴툴거리지만 속으로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이나, 민기를 향한 애정 같은 걸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민영은 정화의 속마음을 다 알아차린다.
민영은 정화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하는데 마을을 지나서도 멈추지 않는다. 정화의 망설임을 알아채고 민기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준 것 아닐까? 그런데 사실 두 사람이 이혼할 정도로 사이가 나쁘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서로 익숙해진 걸수도 있고, 그렇지만 아직 속에는 답답한 감정이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이 결말이 그냥 한 번의 일탈로 끝난 건지 두 사람의 끝을 의미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제가 이별이기 때문에 이별의 시작으로 추측할 뿐이다.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 정지돈
주인공의 이름이 나왔던가? 아마 안 나왔던 것 같다.
냉동인간이 부활하는 소재의 SF 소설인데 굉장히 인상 깊은 결말이었기에 추천한다. 사실 인상 깊은 정도가 아니고 충격으로 잠이 다 깰 정도였다. 진짜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확실히 죽음과 SF는 환상의 짝궁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몸과 마음이 생각보다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 몸은 의식에 따라 다르게 인지될 수 있는 고깃덩이에 불과해.
주인공은 똑똑하고 멋있는 여자 모어와 사귀는 사이다. 그녀가 왜 자신과 사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며 모어의 말에 대체로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황당한 제목답게 모어는 사실 남편이 있다. 8년 전에 죽은 전남편이다. 모어의 전남편은 냉동 보관되어 홀로그램으로 부활할 예정인데, 모어는 이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며 함께 전남편을 보러 가자고 말한다. 주인공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모어 같은 여자와 사귈 수 있음에 감사하며 모어를 따라간다.
내가 느낀 FM-2080(모어의 전남편)의 첫인상은 스티브 잡스였다. 천재라고 불리며 그의 어록이 인터넷에 남아 있는데 단명했다는 사실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FM-2080은 본인이 직접 개명한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천재지만 좀 독특한 사람이다. 다만 주인공과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죽음에 대한 그의 철학적 태도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FM-2080은 불멸이나 영생에 조금도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계장치는 유기체보다 연약합니다. 인간보다 오래 쓰는 기계를 본 적 있나요?
나는 계속해서 부활하면 영생할 수도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만약에 지금 여기의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 파운데이션에서 나를 모사해 만든 가상 존재라면 어떨까요.
구분할 수 있어요?
못 하죠.
그렇죠. 하지만 더 이상한 건 저도 그걸 구분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부활'이란 뇌를 저장해놨다가 홀로그램으로 구현하는 것에 가깝다. 기존의 DNA에 다른 정보를 덧입히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홀로그램이기 때문에 다시 죽지도 못한다.
주인공도 이런 점에서 부활이라는 명칭에 의문을 가진다.
그들이 말하는 부활이 이런 거라면 부활한 생명을 그 전과 동일한 개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FM-2080의 뇌를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도 그건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 진짜 예전의 그는 아니지 않나.
결말에 대한 긴 생각 (스포주의! 직접 읽어보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근래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마지막 한 장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아,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부활이 진짜 부활인가하는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는 소설인가? 싶었다. 주제가 죽음이었으니까!
주인공은 FM-2080을 만나는 날을 하루 남겨두고 마지막 잠을 청한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뭔가 이상했다.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으며, 몸이 너무 가벼웠다. 홀로그램이 된 것이다. 모어에게 말을 건네는데 아무런 말도 전해지지 않는다. 앞에는 본인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FM-2080이다.
그러니까, 모어는 처음부터 주인공의 몸에 FM-2080을 이식할 생각을 주인공을 데려온 것이다. 이 못된 사람들... 다른 사람의 몸을 동의도 없이 차지하고는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다니. 진짜 소름끼치고 충격적이었다.
결말을 보고 앞부분을 다시 읽어보는데, 생각보다 복선이 많이 숨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의 엑기스는 정보고 DNA는 정보들의 배열이기 때문에 기존의 DNA에 다른 정보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존재를 새기는 것이다.
일종의 빙의 같은 거죠. DNA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다면 어디든 빙의될 수 있어요.
'빙의'라고 분명히 언급이 됐다. 이 대목에서는 나무에도 빙의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그 대상이 사람이 될 줄이야...
만약 그의 기억 역시 그대로 이어진다면 그를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냐고 졸탄은 물었다. 부활한 그가 목소리도 얼굴도 전과 다르지만, 아무도 모르는 모어와의 기억을 정확히 떠올릴 수 있고, 되살아난 스스로를 인지한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에 주인공과 모어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주인공이 FM-2080과 즐겁게 대화하며 그를 좋게 평가해, 죽은 사람들이 산 사람의 고민을 완전히 없애준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는데 모어는 이렇게 대답한다. "누가 죽어?"
모어는 처음부터 FM-2080의 빙의자로 주인공과 사귄 것이다. 또 소름돋았던 부분은 FM-2080과 만난 이후로 모어는 주인공과 격렬한 섹스를 하는데, 이 때문에 주인공은 FM-2080 덕분에 모어와 사이가 좋아졌다고 착각한다. 사실 모어는 FM-2080과 주인공의 몸이 바뀔 것을 대비해 그 몸에 익숙해지려고 한 것 뿐인데.
그 외에도 파운데이션이라는 회사에 대한 수상한 소문도 언급된다. 파운데이션의 창립자(이름이 뭐더라..)의 아내가 자살했는데, 사실은 자살이 아니고 본인이 죽인 거라는 소문이다. 아마 이 소문도 사실일 거다. 그의 아내는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했는데, 그가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영원히 홀로그램으로 남겨두기 위해 죽인 걸 수도 있다. 그의 아내도 이미 홀로그램으로 부활했는데, 홀로그램이라 자살마저 할 수 없어 괴로워했다고 한다.
아무튼 냉동이랑 부활이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아는 그가 아내를 죽인 거야. 영원히 가두려고.
결말은 결말이고,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떠오른다.
소설에도 이미 언급이 되었듯, FM-2080이 정말 부활한 것이라 볼 수 있는가? 그가 FM-2080과 똑같은 홀로그램이 아니라 정말 사람으로 느낄 수 있냐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껴졌다. FM-2080은 이미 한 번 죽었기 때문에 거기서 그의 이야기(인생을 이야기로 표현한다면)는 이미 거기서 끝났다. 대신 그 때까지 살아왔던 이야기를 AI에 업데이트 시켜 그를 닮은 로봇을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다. 실제 그의 육체는 주인공의 몸이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변화하기 마련인데, 이런 과정 없이 한정된 이야기만으로 반복해서 재생되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아니면 DNA기 때문에 그 멈춰진 상태에서 또 다르게 변화하는 것인가?
'되살아난 본인을 인지한다'라, 되살아났다는 걸 인지하는 주체가 중요한 것 아닌가? 예를 들어 복제인간이 원본이 부활했다는 걸 인지하고, 본인이 그 원본이라고 믿는다면 그걸 실제 본인이 부활했다고 할 수 있는건가. 아무튼 복잡한 문제다. 부활인간을 실제 사망한 본인과 동일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는.
뭐가 됐든, 그런 식으로 몸을 옮겨가며 계속 희생될 사람들이 불쌍하고... 당연히 윤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만 해도 모르고 끌려갔다가 함부로 죽지도 못하는 홀로그램이 되고 말았지 않나.
FM-2080에 대한 한 가지 의문점도 있긴 하다.
주인공과 FM-2080의 대화를 보면 그는 불멸이나 영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부활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단순히 주인공을 안심시키고 속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의 본심이었다면, 지금 부활한 FM-2080은 정말로 FM-2080이라고 볼 수 있는가? 사실 FM-2080은 부활을 원치 않았는데 모어의 욕심으로 그와 닮은 무언가를 계속 살려두고 있는 건 아닐까.
오랜만에 철학적인 주제로 깊이 고민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리뷰는 여기서 끝이다.
이 짧은 세 개의 소설이 날 얼마나 즐겁게 했는지 모른다. 좋은 책을 고른 것 같아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