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
「눈사람 자살 사건」- 최승호 | Cursive
cikat
2022. 11. 19. 17:12
눈사람 자살 사건
최승호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Billie Marten - Cursive]
And I will never be
I will never be myself
사람은 죽을 이유보다 살 이유를 찾지 못했을 때 죽음을 선택한다고 한다. 눈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세상에서 마지막만큼은 따뜻한 물에 녹을 수 있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눈사람이 진정 원한 것은 죽음이었을까 따뜻한 마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