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

「해부극장 2」- 한강

cikat 2022. 11. 23. 18:44

해부극장 2

한강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견딜 수 없다, 내가

 

안녕,

이라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말하고

정말이에요,

라고 대답할 때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닿았다 떨어질 때

 

*

 

그러니까 내 말은,

 

안녕.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

 

나에게

심장이 있다,

통증을 모르는

차가운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 라고

견디며 말한다

일 초마다 오므렸다 활짝 펼쳐지는 것,

일 초마다 한 주먹씩 더운 피를 뿜어내는 것이 있다

 

*

 

수년 전 접질렸던 발목에

새로 염증이 생겨

걸음마다 조용히 불탈 때가 있다

 

그보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이

마룻장처럼 삐걱일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으스러졌던 손목이

손가락 관절들이

다정하게

고통에 찬 말을 걸어온다

 

*

 

그러나 늦은 봄 어느 오후

검푸른 뤼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

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살갗이 없으니

물론 여위었고

역삼각형의 골반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엉치뼈 위의 디스크 하나가

초승달처럼 곱게, 조금 닳아 있다

 

썩지 않을,

영원히 멈춰 있는

섬세한 잔뼈들

 

뻥 뚫린 비강과 동공이

곰곰이 내 얼굴을 마주 본다

혀도 입술도 없이

어떤 붉은 것, 더운 것도 없이

 

*

 

몸속에 맑게 고였던 것들이

뙤약볕에 마르는 날이 간다

끈적끈적한 것

비통한 것까지

함께 바싹 말라 가벼워지는 날

 

겨우 따뜻한 내 육체를

메스로 가른다 해도

꿈틀거리는 무엇도 들여다볼 수 없을

 

다만 해가 있는 쪽을 향해 눈을 잠그고

주황색 허공에

생명, 생명이라고 써야 하는 날

 

혀가 없는 말이어서

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해부학 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