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 35

「폭풍」스스로 폭풍이 되어 | 정호승

폭풍 정호승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날으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 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Horrible Night - Toil] https://youtu.be/3zVRXwiUc38 가사 더보기 Horrible night 돌아가기 싫어 Woooaaahh 그 밤 이유도 몰라 넌 Good night What the fuck is wrong wit u Horrible n..

시와 노래 2023.07.10

「달리다」멈추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 황경신

달리다 황경신 너를 만난 이후로 나의 인생은 세 가지로 축약되었다. 너를 향해 달려가거나 너를 스쳐 지나가기 위해 달려가거나 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려간다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인지 알 수 없다 풍경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그리움의 색채를 보니 지금은 아마 이별의 초입이겠구나 너와 헤어진 이후로 나의 인생은 두 가지로 요약되리라 멈추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cover.박시환] https://youtu.be/v9UX5IWqoPA 오디션만의 감동이 있다. 아무도 몰랐던 한 사람의 스토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이 그만한 감동을 준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는 원곡도 좋지만, 항상 박시환의 오디션 버전으로 듣게 된다. 이 시절만의 간절함이 노래의 감동을 극대..

시와 노래 2023.06.22

「사막」- 오르텅스 블루

사막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사막에서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남겨진 기분은 어떨까. 남겨진 건지, 남기를 선택한 건지 한없이 자유롭고 때로는 사무치게 외로운 걸음. 얼마나 걸어야 만날 수 있을까, 미지의 세계가 외로움을 자극한다.

시와 노래 2023.06.14

「오래된 테이프」우리는 한 곡만 반복해서 들었고, 한 장면만 반복해서 봤다. | 백상웅

오래된 테이프 백상웅 지난 사랑은 비디오나 카세트처럼 미세한 모터 소리를 낸다. 지루할 때는 앞이나 뒤로 재빠르게 넘긴다. 우리는 테이프를 꺼내 녹화를 뜬다. 우리의 과거는 10센티미터만큼의 미래에 둥글게 말리고 있다. 그러니까 어느 골목에서 갑자기 과거의 사랑이 재생되더라도 놀라면 안 된다. 우리는 그저 먹먹해지면 되니까. 과거와 미래는 뒤바뀐 기억이다. 지금 사랑하면서 우리가 예전에 지나온 어느 골목을 떠올리는 건 죄다. 우리는 한 곡만 반복해서 들었고, 한 장면만 반복해서 봤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느 때고 열대야처럼 늘어진다. 사랑이 저기 있는데, 리모컨을 쥐고 소파에 누워서 우리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꾸벅꾸벅 조는 것뿐이다. 목소리는 변하고 얼굴은 일그러진다. 필름을 테이프에서 뽑아내버리..

시와 노래 2023.06.07

「다음부터」 - 엄지용

다음부터 엄지용 이번까지만 이렇게 하고 다음부턴 이러지 말아야지 라며 버려버린 시간들이 언젠간 한데 모여 우린 뭐 네 인생 아니었냐고 따져 물어올 것만 같다 우리는 과거를 발판삼아 미래에 달라질 것을 기약한다. 후회할 때면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지금 '나'라고 하는 주체는 과거의 집약체나 다름없는데도, 과거의 잘못들을 변명하고 부인하려 애쓴다. 과거를 굳이 지우려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 또한 자신이니까.

시와 노래 2023.05.30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 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인연들이 나를 전부 알 수는 없는 것처럼, 나도 사실은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면서 나는 나의 가치를 함부로 매기지 않을 것이다. 살아온 환경..

시와 노래 2023.05.12

「잠수」 - 유시명 / 사람은 이상하고 사랑은 모르겠어

잠수 유시명  사랑 속에 얼굴 담그고누가 더 오래 버티나 시합을 했지넌 그냥 져주고 다른 시합하러 갔고난 너 나간 것도 모르고아직도 그 속에 잠겨있지      [이예린 - 사람은 이상하고 사랑은 모르겠어]  가볍고 쉬운 마음 기억도 못 할 말들우린 무뎌지기나 하지아름다운 것들은 다 어디에비겁한 당신들   나만 기억하는 사랑, 나만 미련남은 인연,오로지 나만 끈을 놓지 못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내 마음의 총량이 상대의 마음을 한참 넘나드는 것을 느꼈을 때계속해서 무너진다.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시와 노래 2023.05.02

「반복재생」- 이훤 / Pink Cloud

반복재생 이훤 밤을 겉돈다 꿈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왜 하나같이 내 것이 아닐까 - 이훤,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Pink Cloud - 휘인] 한때 꿈꾸던 것들은 하얀 바람에 저 멀리 흐려지네 꿈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전부 내 것은 아니겠지만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맞다. 어쩌면 열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증오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갖지 못하는 것이나 다시는 보지 못하는 사람을 표현한 것일까? 꿈에 매몰될 수록 현실의 나는 꿈과 점점 멀어진다.

시와 노래 2023.04.28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 그래서 다행인 나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그래서 다행인 나를 - 윤지영] https://youtu.be/rqliCpIG8Fc 내가 감히 사랑을 이해할 수 있기를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미움 따위는 없기를 ..

시와 노래 2023.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