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테이프
백상웅
지난 사랑은 비디오나 카세트처럼 미세한 모터 소리를 낸다. 지루할 때는 앞이나 뒤로 재빠르게 넘긴다.
우리는 테이프를 꺼내 녹화를 뜬다. 우리의 과거는 10센티미터만큼의 미래에 둥글게 말리고 있다.
그러니까 어느 골목에서 갑자기 과거의 사랑이 재생되더라도 놀라면 안 된다. 우리는 그저 먹먹해지면 되니까.
과거와 미래는 뒤바뀐 기억이다. 지금 사랑하면서 우리가 예전에 지나온 어느 골목을 떠올리는 건 죄다.
우리는 한 곡만 반복해서 들었고, 한 장면만 반복해서 봤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느 때고 열대야처럼 늘어진다.
사랑이 저기 있는데, 리모컨을 쥐고 소파에 누워서 우리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꾸벅꾸벅 조는 것뿐이다.
목소리는 변하고 얼굴은 일그러진다. 필름을 테이프에서 뽑아내버리기 전까지, 우리는 적당히 늙어간다.
[JVKE - Golden Hour (Cover.나의 노래 메모장)]
어떻게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수 있겠냐고 묻겠지만, 행복했던 순간만을 추억하면서 살아가는 건 쉽다.
이미 닳고 닳아버린 기억을 억지로 꺼내 추억하고, 소중한 곳에 담아 다시 보관한다.
잊어버릴 때쯤 우연히 발견하고, 다시 추억하고, 가슴에 새겼다가
살다보면 다시 잊어버리고. 그러다 문득 생각나고.
누군가와 같이 보낸 순간에서 기억나는 순간은 매우 일부에 불과하다.
행복했던 순간, 미워했던 순간, 즐거웠던 순간, 그리웠던 순간들.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모아 기억에 보관한다.
그리고 추억한다. 그것만이 전부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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