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최금진
나는 잠수함,
네가 사는 물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자꾸 아래로 침잠하는 버릇, 아무데도 정박할 수 없구나
문어발처럼 뻗은 섬의 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용암을 토하는 화산의 아가리가 얼마나 깊은지
나는 네가
그런 어둡고 탁한 깊이를 평생 모르고 살아가길 바란다
어느날엔가 그냥 장난처럼 낚싯대를 가지고와
그 끝에 잠시 파닥거리는 웃음을 미끼로 달고서
재미있게 하루를 드리웠다가 가거라
그때 나는
온통 철갑으로 둘러진 무거운 몸을 죄악처럼 입고서
네 그림자 밑을 조용히 스쳐지나갈 것이다
녹슨 쇳조각 떨어져내리는 폐선처럼
심해의 어둠에 나를 꿇어앉혀야 할 일만 남은 것처럼
미안하다, 너에게 가지 못한다
나는 잠수함,
물 밖으로 꺼내놓은 작은 잠망경 하나에
행복한 너를 가득 담고서 네 앞을 지나간다
깊은 해구 속에서
무시무시한 귀신고래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나는 밑바닥을 산다 그리고
이제 간신히 너 하나를 통과해가고 있다
미안하다,
너에게,
다신 가지 못한다
[Drowning Love]
나는 네가
그런 어둡고 탁한 깊이를 평생 모르고 살아가길 바란다
바다와 관련된 문학을 좋아한다. 특히 현대에도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심해 이야기가 흥미로워 관심이 많다.
바다의 깊숙한 곳에서 오랜 기간을 머무르는 잠수함이 바로 위에 있는 상대를 지나치기만 하고 직접 만나지는 못하는 이 시가 신선하면서도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사람이란 이루어질 수 없을 때 그것에 대해 더 열망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만날 수 없는 두 대상이 애달프다. 잠망경 너머로만 볼 수 있는 그 상대가 어둡고 깊은 심해를 모르고 살아갔으면 하는 그 마음이 또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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