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착각
표지에 '우리는 왜 게으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라고 적혀 있는데, 이 부분을 보고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게으름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실제로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게으름에 대해 자책하는 성향이 심하기 때문에 게으름에 대한 내 인식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읽게 되었다.
<들어가는 글 : 내가 게으르다는 착각에 빠진 이유>
나는 생산적인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이런 평판에는 큰 대가가 따랐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항상 피곤하고, 버거워하고, 자신에게 실망한다. 아무리 애써도 부족하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극도로 효율적인 것을 좋아했고, 전날 밤 나를 걱정하게 만든 모든 일을 열심히 묵묵히 해냈다.
하지만 그렇게 달리고 난 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휴식을 취하거나 선을 그을 때마다 내가 게으르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게으른 아이는 구제 불능으로 낙인찍혔다. 게으른 아이들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드러나는 부분을 몇 문장 가져와봤다.
저자는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이고, 게으른 사람을 세간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독감에 걸렸음에도 무리해서 일을 하다가 몸이 망가진 후에야 쉬게 되었고, 쉬면서 게으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으르면 가치가 없다' -> '나의 가치는 생산성을 통해 얻어진다' => '성취하지 못하고 열심히 할 동기가 없는 사람은 부도덕하다'는 사회의 인식에 대해 깨닫고, 심리학 연구를 통해 게으름이 자기 보존 본능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게으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가 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실 들어가는 글을 읽고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했다. 게으름에 대한 사회의 인식,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개개인의 사고 등에 공감하지만, 열정적으로 살아 온 저자와 다르게 나는 정말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저자의 시선과 내 시선이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혐오하면서도 게으르게 살아가며 자괴감을 느끼는 내가, 게으름은 없다고 주장하는 이 책을 읽고 혹여나 더 논리적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으로 인해 게으름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게 된다면, 어쩌면 내가 앞으로 내 게으름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책장을 넘겼다.
1장 - 게으름이라는 거짓
-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무엇인가?
-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어디에서 왔는가?
-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어디에나 있다
- 게으르다고 느끼는 이유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무엇인가?>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쉬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생산적이지 않은 사람은 생산적인 사람보다 내재된 가치가 적다는 신념 체계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크게 세 가지 교리로 구성된다.
1. 당신의 가치가 곧 당신의 생산성이다.
- 우리는 사람들을 직업으로 정의한다. 생산적이던 사람이 부상, 질병, 비극적인 개인사 혹은 노화로 예전만큼 못 해내면, 그가 정체성의 핵심적인 부분을 상실한 것으로 여기고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운다.
은퇴한 사람들은 대개 우울해지고 삶에 목적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만성적으로 과로하는 사람은 몸이 원하는 것을 무시하기 일쑤다. 우리는 자신을 간과하고 건강을 돈이나 성취를 얻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본다.
2.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신뢰할 수 없다.
-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우리 모두 나태해지고 무능해질 수 있으며, 약하다는 신호는 무엇이든 불길하다고 말한다. 당신이 몸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을 밀어붙이고, 최소한의 편의만을 청하도록 부추긴다.
3. 항상 더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 게으름이라는 거짓에 따르면, 가치 있는 사람은 하루를 이상적으로 근면 성실하게 채운다. 어떤 대단한 일을 해냈을 때 그것에 안주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어디에서 왔는가?>
전설의 거인 나무꾼 폴 버니언과 유명한 사과 묘목상이자 개척자인 조니 애플시드의 이야기부터 강인하고 독립적인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영화, 콘래드 힐턴과 같은 기업가들의 비망록까지 미국 문화에서 유명한 전설들은 강력한 의지력 하나로 자수성가해 사회를 변화시킨 근면 성실한 집념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 속 영웅은 대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까운 인맥도 없고, 흔히 사회의 규칙을 무시한다. 이런 신화들은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세상이 공정하고 자업자득이 통한다고 믿으면, 사회복지 제도를 지지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궁핍에 대해 동정심을 가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어디에나 있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무엇인가?>
일을 하면 그만큼의 휴식도 당연히 필요하다. 우리가 공부를 4시간 내내 한다고 효율성이 올라가지 않듯이, 휴식은 우리의 건강과 일의 효율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잠시 간식을 먹거나 잠을 취하는 것을 '게으르다'라고 치부해버리면 우리는 모두 나태하고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하루를 꽉꽉 채워 사는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을 기준삼아 자신을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을 찍으면 더 많이 일하기를 추구하고, 사소한 성취감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어디에서 왔는가?>
저자는 게으름이라는 거짓이 미국 전역에 확산되게 한 주요한 요인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제시했다.
1. 청교도인의 이주 - 누군가 근면성실한 일꾼이라면, 그것은 신이 그를 구원하기 위해 선택했다는 신호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2. 식민지에서 부유층에게는 노예들이 일을 열심히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 - 종교적 가르침과 교화를 통한 동기 부여
3. 대중매체에서 다뤄지는 게으름 - 가난으로 고생하는 등장인물들이 열심히 일하면 상류 계층으로 신분이 상승할 수 있다는 이야기의 유행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의 이유를 게으름으로 보는 시선은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아직까지 가난한 것은 열심히 일하지 않은 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 것 같다. 우리가 생활하고, 공부하고, 병원가고, 이동하는 모든 행동이 돈으로 굴러가는데 마냥 열심히 일한다고 가난을 탈출할 수 있다는 논리는 현대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책에 잠깐 인용된 "Belief in a Just World and Redistributive Politics"라는 연구는 부와 빈곤의 원인과 개인이 자신의 운명에 책임을 져야 하는 정도에 대한 견해가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ChatGPT에게 가난과 게으름의 연관성에 대해 물어봤다.
현대에는 가난은 게으름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라는 의견이 우세한 것 같다.
[2019 노벨경제학상] '게으름이 가난 초래' 통념 뒤집어, 빈곤 완화 새 접근법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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